[발행인 칼럼] 법무부 장관의 ‘엄정한 처벌’ 발언, 무죄추정의 원칙은 살아 있는가
이성애 기자
leesungae7660@gmail.com | 2026-07-05 08:22:10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절대적 원칙이다. 그 법치주의의 핵심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제4항은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이는 단순한 법 조항이 아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을 함부로 단죄하지 못하도록 만든 민주주의의 안전장치다. 수사기관도, 행정부도, 언론도, 여론도 법원의 최종 판단 이전에는 누구도 유죄를 확정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SNS 발언은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장관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총회장의 구속기소 사실을 언급하며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규정했고, “엄정한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물론 범죄 혐의가 있다면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종교 지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혐의의 중대성이 아니라 발언 주체의 위치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를 총괄하는 행정부 최고 책임자다. 검찰의 수사와 공소유지를 지휘·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처벌의 불가피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다면 국민은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재판부는 독립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는 국가 권력의 핵심 인사가 이미 결론을 내려놓은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사법부가 실제 영향을 받았는지 여부와 별개로, 국민이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다.
사법 정의는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특히 이번 논란은 정교분리 원칙과도 맞물려 있다.
정 장관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강조하면서도 게시글 말미에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특정 종교 지도자를 겨냥한 상황에서 공직자가 종교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에 충분했다.
국가는 종교를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비종교를 동등하게 보호하는 데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국가는 종교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종교 역시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는다.
최근 세계적 종교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비녜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에 우려를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견해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국제사회가 한국의 종교 자유와 사법 중립성을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선한 사람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 비호감 인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집단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만약 여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헌법 원칙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권력이 미워하는 집단에게는 절차적 권리를 축소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모든 국민에게 돌아온다.
법치주의는 결과보다 절차를 존중하는 체제다.
수사기관은 증거를 제시하면 되고, 변호인은 반박하면 된다. 법원은 양측의 주장을 검토해 판결하면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 역시 같다.
재판 결과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를 지키는 것이다.
헌법은 권력자의 신념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종교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다.
법 앞에서 누구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그 원칙이 흔들리는 순간, 위태로워지는 것은 한 종교단체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의 권위다.
글 발행인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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