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박 한 통 뒤에 남겨진 질문
이성애 기자
leesungae7660@gmail.com | 2026-08-08 13:35:54
물품보다 중요한 것은 ‘연락 두절 가구’ 관리체계
[애플온뉴스=이성애 기자]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경기북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들이 취약계층을 위한 여름나기 지원에 나서고 있다. 생수와 수박, 보양식과 여름 이불을 전달하고 오래된 에어컨을 청소하며 홀로 사는 어르신의 안부를 살핀다.
폭염에 취약한 주민을 직접 찾아가는 이들의 손길은 분명 소중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건네는 물품 하나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립된 이웃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원 현장을 취재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질문이 남는다.
‘지원 물품을 전달한 뒤, 그 가정의 안전은 누가 계속 확인하는가.’
◆ ‘몇 가구 지원’ 뒤에 가려진 사람들
최근 남양주 다산1동에서는 홀로 사는 65세 이상 어르신 등을 중심으로 폭염 취약가구 80곳에 여름나기 물품을 지원했다. 포천에서는 6·25 참전유공자 9가구를 찾아 에어컨을 청소하고 수박과 감사편지를 전달했다.
의정부 신곡1동은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어르신 62명을 대상으로 맞춤형 상담을 추진하고 있다. 지원의 형태는 다르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주민을 먼저 찾아가겠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업 성과가 ‘몇 가구에 무엇을 전달했는가’라는 숫자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물품을 받은 가구는 기록되지만 전화번호가 바뀌었거나 장기간 집을 비워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른 사람은 통계 밖으로 밀려나기 쉽다.
정작 위험한 사람은 지원 명단 안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
◆ 폭염은 기상현상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
같은 기온이라도 모든 사람이 똑같은 더위를 겪는 것은 아니다. 냉방이 가능한 집과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야 하는 집의 여름은 다르다. 가족과 함께 사는 어르신과 홀로 생활하는 어르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도 같지 않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 거동이 불편한 주민, 반지하나 옥탑방 등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폭염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밤에도 실내 온도가 떨어지지 않으면 수면 부족과 탈수, 기저질환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할 힘조차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폭염 취약계층 지원은 ‘선물을 전달하는 복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품 전달은 지원의 시작이어야 한다.
가정을 방문해 냉방기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사용을 꺼리고 있지는 않은지,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건강 이상은 없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긴급한 문제가 확인됐다면 보건소와 복지부서, 소방기관, 주거지원기관으로 연결돼야 한다.
◆ 폭염 대책의 성패는 ‘두 번째 확인’
특히 중요한 것은 첫 방문 이후다.
폭염특보가 이어지는 동안 대상자의 안부를 얼마나 자주 확인하는지, 전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누가 현장을 방문하는지, 문이 잠겨 있거나 건강 이상이 의심될 때 어떤 절차로 대응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통장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생활지원사, 복지기관이 각자 취약가구를 관리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담당자별 명단이 겹치거나 반대로 누구의 관리도 받지 못하는 가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가 중심이 돼 대상자와 연락 이력, 방문 결과, 추가 지원 필요 여부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지원 실적을 발표할 때도 ‘80가구에 물품을 전달했다’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된다. 연락이 닿지 않은 가구가 몇 곳인지, 현장에서 발견된 위기 사례가 있었는지, 어떤 후속 지원으로 연결했는지까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실효성을 시민이 확인할 수 있다.
수박 한 통과 생수 한 상자는 무더운 여름을 견디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어르신에게는 그 온기가 닿지 않는다.
폭염 복지의 진짜 성과는 전달한 물품의 개수가 아니다. 위험에 놓인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이 안전한지 끝까지 확인했는가에 달려 있다.
경기북부의 폭염 대책도 이제 ‘몇 가구를 지원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연락이 닿지 않는 단 한 사람까지 확인했는가.’ 수박 한 통을 전한 뒤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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