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와부에 집보다 먼저 놓아야 할 것

이성애 기자

leesungae7660@gmail.com | 2026-08-16 09:06:12

2만 1700호 신규 공공택지 발표… 재개발 포함 3만 2700호
‘선교통 후입주’ 약속, 이번에는 계획표에 그쳐선 안 돼
정부는 13일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일원 228만㎡에 2만 1700호 규모의 신규 공공택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AI 제작) 

[애플온뉴스 남양주= 이성애 기자] 지난 14일 최현덕 남양주시장과 출입기자단이 오찬을 함께했다.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지만, 내 머릿속에는 전날 저녁 전해진 정부의 대규모 주택 공급 발표가 계속 맴돌았다.

정부는 13일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일원 228만㎡에 2만 1700호 규모의 신규 공공택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이날 공개한 수도권 신규 택지 2만 7200호 가운데 약 80%가 남양주에 집중됐다. 정부는 2027년 하반기 지구 지정과 2029년 하반기 보상을 거쳐 2030년 상반기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와부의 지도가 통째로 바뀌는 규모다.

그러나 남양주시민에게 ‘대규모 주택 공급’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왕숙·왕숙2신도시와 진접2지구, 양정역세권 등 도시 곳곳에서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때마다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됐지만, 시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기대보다 ‘교통’이었다.

와부도 다르지 않다.

현재 와부지역에서는 신규 공공택지 2만 1700호뿐 아니라 원도심 재개발·정비사업을 통해 약 1만 1000호의 주택 공급이 추진되고 있다. 두 사업을 합하면 총 3만 2700호다. 모든 사업이 마무리되면 와부지역 인구는 현재의 두 배 수준인 약 1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3만 2700호는 주택의 숫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출퇴근 차량이 늘어나고, 전철 이용객이 몰리며, 아이들이 다닐 학교와 시민들이 이용할 병원·공원·주차장·복지시설에 대한 수요가 함께 증가한다는 뜻이다.

경의중앙선은 이미 잦은 지연과 혼잡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도심역과 덕소역 주변 도로 역시 출퇴근 시간마다 차량 정체가 반복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통망 확충 없이 수만 호의 주택부터 들어선다면 와부는 새로운 자족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베드타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남양주시는 이번 발표에서 ‘선교통 후입주’를 강조했다. 신규 공공택지에 농생명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해 일자리와 주거가 공존하는 자족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방향은 옳다. 문제는 실행 시점이다.

그동안 수도권 신도시에서 반복된 문제는 교통대책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계획은 있었지만 주택 입주보다 늦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입주한 뒤 수년 동안 교통 불편을 견뎌야 했고, 뒤늦게 도로와 철도 건설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야 했다.

이번에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

주택 착공 목표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철도와 도로, 광역버스, 환승시설을 언제까지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구체적인 시간표를 먼저 내놓아야 한다. 경의중앙선의 운행 개선과 철도 교통망 확충, 주요 간선도로의 병목 해소 방안도 공공주택지구 계획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농생명바이오 클러스터 역시 이름만 그럴듯한 산업용지로 남아서는 안 된다. 어떤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을 유치할 것인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필요하다. 직주근접은 아파트 가까이에 산업용지를 배치한다고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존 주민의 목소리가 빠져서는 안 된다. 정부가 속도전을 이유로 지구 지정과 보상 절차를 앞당기더라도 주민 의견 수렴까지 형식적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토지 소유자와 세입자, 농민, 원도심 주민, 재개발지역 주민이 처한 상황은 각각 다르다. 보상과 이주, 생계 대책을 세밀하게 살펴야 또 다른 갈등을 막을 수 있다.

최현덕 시장은 정부 발표 다음 날인 14일 예정지를 찾아 교통과 생활 기반시설 여건을 긴급 점검했다. 발표 직후 현장으로 향한 것은 시의 적절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현장점검을 넘어선 남양주시의 협상력이다.

남양주시는 정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요구할 교통·교육·의료·산업 기반시설의 목록을 구체화하고, 사업 단계별 이행 여부를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정부 결정을 기다리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남양주가 원하는 도시의 조건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와부읍 2만 1700호 공급은 남양주에 주어진 기회인 동시에 무거운 시험대다.

도시는 아파트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집과 길, 학교와 병원, 일자리와 공동체가 함께 들어설 때 비로소 사람이 살아갈 도시가 된다.

정부가 와부에 가장 먼저 놓아야 할 것은 아파트의 기초가 아니다. 주민들이 출근길과 등굣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뢰다. ‘선교통 후입주’가 다시 한번 발표문 속 약속에 머문다면, 2만 1700호는 희망의 숫자가 아니라 시민이 감당해야 할 불편의 숫자가 될 수 있다.

남양주의 미래는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무엇을 먼저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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