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발표와 확인된 사실 구분해야”
[애플온뉴스=이성애 기자] “우리는 수사기관의 발표나 제기된 의혹을 확정된 사실처럼 보도하지 않으며, 확인된 사실과 주장을 명확히 구분한다.”
언론인들이 수사기관의 발표와 제기된 의혹을 확정된 사실처럼 보도하지 않고, 무죄추정의 원칙과 당사자의 반론권을 존중하겠다고 공동 선언했다. 특정 종교와 집단을 향한 혐오와 낙인을 경계하고, 오보가 확인될 경우 신속하게 바로잡겠다는 책임도 함께 약속했다.
애플온뉴스가 주최·주관한 ‘사법 정의인가, 여론재판인가?’ 언론인 토론회가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한 지역 커뮤니티 공간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언론 보도가 수사와 재판,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기준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에서는 ▲여론과 사법에 미치는 언론의 영향력 ▲무죄추정 원칙과 혐의 중심 보도 ▲특정 종교 보도의 균형성 ▲반론권과 다양한 목소리의 보장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김성민 시사의창 회장이 좌장을 맡았으며, 김상겸 동국대학교 헌법학 명예교수, 이진희 우리일보 대표, 차재명 인천매거진 본부장, 신선혜 미디어이슈 본부장, 김성배 경도신문 사회부장, 정석철 내외통신 총본부장, 손성창 잡포스트 부장, 김영길 수도권일보 국장, 원희경 시사의창 대표 등이 참석했다.
애플온뉴스가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서 개최한 ‘사법 정의인가, 여론 재판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무죄추정 원칙과 언론의 반론권 보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애플온뉴스= 제공)
◆“특정인의 유무죄 아닌 절차의 공정성 살펴야”
이성애 애플온뉴스 발행인은 개회사를 통해 토론회의 취지를 설명하며 특정 사건이나 개인에 대한 유·무죄 판단과는 거리가 있는 자리임을 분명히 했다.
이 발행인은 “이번 토론회는 특정 개인의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거나 특정 종교를 옹호하고 반대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며 “사법절차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언론이 혐의와 확정된 사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자리”라고 밝혔다.
이어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무죄추정의 원칙은 종교나 사회적 지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며 “개인의 혐의를 특정 종교와 구성원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면 언론 보도 자체가 또 다른 낙인과 처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민 좌장도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곳은 법원”이라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가 지켜졌는지, 언론은 피의자와 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했는지, 종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보도에 개입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단체나 구성원이 실정법을 위반했다면 엄정한 사법 판단을 받아야 하지만, 종교에 대한 사회적 호불호가 수사와 구속, 언론 보도의 기준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수사기관 발표 취재의 출발점일 뿐”
토론에 앞서 김상겸 동국대학교 헌법학 명예교수는 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언론의 자유가 국민에게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언론기관은 취재·보도의 자유와 함께 보도 결과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은 정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여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며 “그 영향력이 큰 만큼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보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수사기관이 발표한 내용을 별도의 확인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 관행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수사기관이 발표한 내용을 앵무새처럼 보도하는 것은 언론기관 본연의 역할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언론은 자체 취재를 통해 발표 내용의 진위를 판단하고 사건의 이면과 반대 의견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중재와 정정보도, 민·형사상 피해구제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피해자가 구제를 받기까지는 시간과 비용, 심리적 부담이 뒤따른다는 점도 지적했다. 피해가 발생한 뒤 수습하는 데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사 내부에 엄격한 사실 검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알 권리와 여론재판의 경계
‘여론과 사법, 언론의 영향력’을 주제로 한 첫 번째 토론에서는 언론 보도의 공익적 기능과 여론재판의 위험성이 함께 논의됐다.
김성배 경도신문 사회부장은 수사와 재판 과정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의 혐의를 사실처럼 전달할 경우 유죄를 예단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은 “언론이 수사와 재판 과정을 알리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필요하지만, 재판이 끝나기 전에 혐의를 사실처럼 다루면 유죄를 예단하는 여론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은 육하원칙과 사실관계에 충실한 보도로 균형을 지켜야 하며, 법원은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석철 내외통신 총본부장도 사실관계가 확정되기 전에 편향된 보도가 반복되면 혐의가 사실로 굳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자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확인된 사실과 법률, 공정한 절차에 기초해 보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참석자들은 수사기관의 발표가 취재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기사의 결론이 돼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수사기관의 주장과 언론이 독립적으로 확인한 사실, 당사자의 해명을 구분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민 시사의창 회장이 13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열린 ‘사법 정의인가, 여론재판인가?’ 언론인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아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애플온뉴스= 제공)
◆제목과 표현이 만드는 유죄의 이미지
두 번째 주제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혐의 중심 보도’에서는 기사 제목과 표현 방식이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이진희 우리일보 대표는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사실처럼 단정하는 보도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고,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피의자를 사실상 범죄자로 낙인찍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사 제목에서 특정 단체나 종교의 명칭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확인됐다’, ‘밝혀졌다’와 같은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사실처럼 단정하거나 특정 단체명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보도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고 편파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언론은 혐의와 사실을 명확히 구분하고 당사자의 반론을 비중 있게 반영해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인격권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정판결 전에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기관은 주장했다’와 같은 법적·객관적 표현을 사용하고, 기사 본문에서도 확인된 사실과 주장·의견을 독자가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종교보도, 비판과 혐오 구분해야
‘특정 종교 보도와 언론의 균형성’을 주제로 한 세 번째 토론에서는 종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언론 보도에 미치는 영향이 논의됐다.
차재명 인천매거진 본부장은 언론이 특정 종교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허위정보와 과장, 편견을 조장하는 표현을 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본부장은 “특정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나 사회적 편견을 배제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보도해야 한다”며 “다수의 관점에 치우치지 않고 소수 종교와 당사자의 목소리도 균형 있게 담아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 관련 갈등을 다룰 때 언론이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미리 재단하기보다, 어떤 기준에서 권리가 충돌하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종교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특정 신앙을 이유로 한 혐오·차별은 구분해야 하며, 신앙 정보가 개인을 표적화하거나 인격권 침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개인정보 취급에도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길 수도권일보 국장은 수사기관이나 고소인의 주장만 중계하듯 보도할 경우 특정 소수 집단을 향한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일수록 근거와 사실에 기반한 보도를 통해 언론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론권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네 번째 주제인 ‘반론권과 다양한 목소리의 보장’에서는 형식적인 반론 보도 관행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신선혜 미디어이슈 본부장은 반론권을 공정하고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한 기본 원칙으로 규정하면서도, 국내 언론 현장에서는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수사기관이나 감사기관이 발표한 혐의는 제목과 기사 앞부분에서 크게 다루면서 피의자나 당사자의 반박과 해명은 기사 말미에 짧게 배치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신 본부장은 “수사기관의 발표는 크게 다루면서 당사자의 입장은 ‘혐의를 부인했다’는 한 문장에 그치는 보도를 반론권 보장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사자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새로운 사실이나 반론이 나오면 후속 보도를 통해 충실하게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균형 보도는 양측의 발언을 기계적으로 같은 분량으로 배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취재원의 설명을 듣고 객관적인 자료로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최초 의혹은 크게 보도하면서 이후 제기된 반론이나 무죄·무혐의 결과는 짧은 기사로 처리하는 관행 역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속도와 조회수 경쟁 넘어 공동 실천
토론을 마친 뒤에는 참석 언론인들의 모두발언이 이어졌다.
손성창 잡포스트 부장은 마감 시간과 속도 경쟁 속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상반된 주장을 충분히 검증하지 못하는 보도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며 언론의 객관성과 균형성을 강조했다.
정석철 총본부장은 수사기관의 발표를 그대로 옮기는 데서 벗어나 언론이 독립적인 확인과 검증 절차를 충실히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길 국장은 언론의 자유가 공공성과 책임을 바탕으로 행사돼야 한다며,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이나 낙인을 확인된 사실과 구분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성배 사회부장은 언론이 지향해야 할 진보는 정파적 이념이 아니라 “육하원칙과 흔들리지 않는 사실관계 지향성의 진보”라며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정직한 보도를 당부했다.
원희경 시사의창 대표는 언론이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피해 회복과 제도 개선을 위한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대표는 “작은 언론사들도 사실 확인과 공동의 실천을 통해 힘을 모으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며 “언론인의 금전적 이해나 명예욕보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저널리즘 윤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섯 가지 공정보도 원칙에 서명
참석자들은 토론회 마지막 순서로 ‘공정한 보도와 사법 정의를 위한 언론인 공동실천 선언문’에 서명했다.
선언문에는 이날 논의된 문제의식과 공정보도를 위한 다섯 가지 실천 약속이 담겼다.
첫째, 수사기관의 발표나 제기된 의혹을 확정된 사실처럼 보도하지 않고 확인된 사실과 주장을 구분한다.
둘째, 수사·재판 보도에서 무죄추정의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존중한다.
셋째, 소수 종교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낙인·편견을 조장하지 않는다.
넷째, 사건 당사자의 반론권과 다양한 목소리를 보장한다.
다섯째, 잘못된 보도나 오보가 확인되면 신속히 바로잡고, 개인과 집단의 인권에 미친 결과에 책임을 다한다.
김성민 좌장은 앞으로의 과제로 언론기관 내부의 사실 검증 체계 구축, 무죄추정 원칙에 입각한 예단 보도 지양, 클릭 수 중심의 여론재판 관행 개선, 추후보도청구권의 실효성 강화 등을 제시했다.
이성애 애플온뉴스 발행인은 “이번 토론회는 특정 개인의 유무죄를 판단하거나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며 “사법절차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언론이 혐의와 확정된 사실을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성찰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어 “공동실천 선언이 일회성 구호에 머물지 않도록 애플온뉴스부터 철저한 사실 확인과 반론권 보장,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보도를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선언문에 남긴 서명은 토론회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실천의 출발점이 됐다. 혐의를 유죄로 바꾸지 않는 기사, 다른 목소리를 지우지 않는 기사, 잘못된 보도에 책임지는 기사로 독자의 신뢰에 답하겠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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