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숲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한 주민은 자신의 생활 공간을 이야기했다.
9일 남양주시 진접읍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잔디광장에서 열린 ‘2026년 광릉숲포럼’. 숲의 가치와 자연·인간의 공존을 논의한 뒤 객석에서 나온 주민의 발언이 오래 남았다. 숲을 관리하는 쪽에서는 완충구역을 넓히고 싶겠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생활할 공간도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는 여러 입장을 함께 듣고 수목원 주변 주민들까지 공생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말에는 광릉숲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담겨 있다. 숲을 지키자는 데 동의하는 것과, 그 보전을 어떤 방식으로 감당할지 합의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누구에게는 자랑스러운 자연유산이 누구에게는 매일의 생활 조건이 된다. 주말에 찾아와 숲을 즐기는 사람과 그 곁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시선이 같을 수는 없다.
광릉숲의 다음 시간을 준비하려면 이 차이부터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 오래된 숲 앞에서 개발의 속도를 묻다
이날 포럼은 ‘560년 광릉숲의 시간에 스며들다’라는 메시지를 내걸었다. 참석자들이 조각을 하나씩 놓아 완성한 퍼즐은 함께 숲의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뜻으로 읽혔다.
그러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과 현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 사이에는 긴 거리가 있다. 행사에서는 한 문장을 완성하면 되지만, 정책에서는 서로 다른 요구를 듣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어떤 곳을 지키고, 어디까지 이용하며, 그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감당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도순 유네스코 MAB 한국위원장은 기조강연에서 오래된 숲의 가치와 자연·인간의 공존을 설명했다. 강연을 들으며 생각한 것은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다. 행정은 사업 기간과 예산 연도로 움직인다. 지역사회는 당장의 생활 개선을 원한다. 숲의 변화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이 서로 다른 시간표를 조정하는 것이 보전 정책의 어려움이다.
새로운 시설은 준공 날짜를 정할 수 있다. 오래된 숲을 되돌려놓을 날짜는 쉽게 정할 수 없다. 그래서 광릉숲 주변의 사업을 검토할 때는 착공과 완공 일정만큼, 그 선택이 오래 남길 영향을 물어야 한다.
숲을 지역의 대표 자산으로 키우겠다는 말에도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방문객 증가나 시설 확충이 숲의 가치 향상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찾게 하려면 먼저 숲이 감당할 수 있는 이용의 범위와 방식을 살펴야 한다. 보호할 공간과 이용할 공간의 기준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560년이라는 숫자가 정책에 의미를 가지려면, 오늘의 결정이 앞으로의 시간에 무엇을 남기는지 따져야 한다.
◆ 보전의 혜택과 부담을 함께 살펴야
광릉숲을 지키는 일에는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그 참여를 오래 이어가려면 주민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날 나온 주민의 발언을 보전과 개발의 대립으로만 받아들이면 논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주민이 말한 생활 공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제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숲 보호에 꼭 필요한 제한과 개선할 수 있는 불편을 구분하는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모든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에도 근거를 설명하고, 가능한 대안을 찾을 책임은 있다. 주민의 의견을 들었다는 기록만 남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 위원장은 강연에서 생태관광을 지역의 음식과 농축산물 등 주민 소득과 연결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대목은 광릉숲의 가치를 지역사회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숲을 찾는 사람이 늘었을 때 그 혜택은 어디로 가는가. 지역 상점과 생산자에게도 기회가 생기는가. 주민이 해설과 교육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가. 청년이 이곳에서 역할을 찾고 경험을 쌓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공존이라는 말이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다만 생태관광을 제안하는 것만으로 주민 소득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누가 참여하고, 어떤 지원을 받으며, 발생한 수익이 어떻게 지역에 남을지 설계해야 한다. 방문객이 늘면서 생길 교통·쓰레기 등 관리 과제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보전의 혜택은 넓게 누리면서 그 부담을 숲 가까이 사는 주민에게만 맡겨서는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숲을 지키는 데 필요한 비용과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는 것이 공존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다.
◆ 포럼의 약속, 다음 현장에서 확인하자
이날 토론에서 청년 참여자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 데 의미를 두면서, 앞으로 다양한 청년이 실제 활동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랐다.
발언할 자리가 생겼다는 것은 반가운 변화다. 그다음에는 참여가 이어질 자리가 필요하다. 주민과 청년이 행사에 초대받는 데서 더 나아가, 보전과 교육 사업의 내용을 함께 논의하고 실행 결과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포럼 이후의 과정이 보여야 한다. 제안 가운데 무엇을 검토할지, 어느 기관이 맡을지, 언제 다시 논의할지 공개해야 한다. 검토가 어려운 사안은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포럼에서 같은 희망과 같은 불편을 처음부터 반복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넓혀야 한다. 참석 인원과 행사 횟수에 더해 숲의 상태를 어떻게 살피고 있는지, 주민의 의견이 어떤 결정에 반영됐는지, 교육과 청년 참여가 얼마나 이어졌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이야기한 자리의 가치는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에서 드러난다.
광릉숲은 오래 지켜온 시간을 보여준다. 그 곁의 주민과 청년은 앞으로 함께 살아갈 시간을 이야기한다. 두 시간을 잇는 일에는 과학적인 보전 기준과 생활을 이해하는 행정, 의견을 주고받는 꾸준한 과정이 필요하다.
어제 포럼에서 완성한 퍼즐의 다음 조각은 행사장 밖에 있다. 숲의 미래를 결정하는 회의에 주민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어가는지, 청년에게 어떤 역할이 열리는지, 보전의 책임을 누가 함께 지는지에서 그 조각을 찾아야 한다.
광릉숲을 물려받을 다음 세대에게 우리가 남겨야 할 것은 건강한 숲과, 그 숲을 함께 지켜갈 수 있는 지역사회다.
애플온뉴스 발행인·편집본부장 이성애
[저작권자ⓒ 애플온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