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온뉴스 칼럼=이성애 발행인] “요즘 청년들은 왜 이렇게 책임감이 없을까.”
기성세대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약속을 잡아도 연락이 끊기고, 일을 맡겨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모임에서도 “잠수탔다”는 말이 흔해졌다. 연락을 피하고 관계를 끊어버리는 청년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청년 세대의 무책임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이 보인다. 지금 청년들은 이전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겉으로는 화려하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과 연결돼 있고, SNS에는 친구와 여행, 맛집 사진이 넘쳐난다. 그러나 정작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다. 온라인에서는 수백 명과 연결돼 있지만 현실에서는 누구와도 깊게 연결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취업은 어렵고 집값은 멀어졌으며 미래는 불안하다. 실패를 견디는 힘은 약해졌고, 작은 상처에도 쉽게 무너진다. 무엇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동네 어른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마을 공동체가 있었다. 혼나기도 했지만 붙잡아주는 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은 혼자 버텨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힘들다고 말하면 “멘탈이 약하다”는 평가가 돌아오고, 뒤처지면 스스로를 실패자라 여기기 쉽다.
결국 많은 청년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대립’이 아니라 ‘잠수’다. 싸우지도 않고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조용히 사라진다. 상처받기 전에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단순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고 신호라는 점이다. 청년들이 공동체 밖으로 밀려날수록 우울과 고립은 더 커지고, 이는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최근 늘어나는 청년 은둔형 외톨이와 고독사 문제 역시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청년들을 향한 비난보다 ‘연결의 회복’이다.
“왜 요즘 애들은 저럴까”라고 말하기 전에, 청년들이 마음 놓고 실패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특히 종교와 공동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사람을 모으는 것을 넘어, 외로운 청년들을 기다려주고 품어주는 관계망이 필요하다. 출석 숫자보다 “요즘 힘든 건 없는지” 먼저 물어봐주는 공동체가 청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어쩌면 청년들은 게으르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 버티다 지쳐버린 세대인지도 모른다.
읽씹보다 무서운 건 ‘잠수’다.
그리고 그 잠수는 지금 우리 사회가 만든 또 하나의 슬픈 초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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